일본에서 몇 년을 살면서 계속 기분 나쁘면서도 궁금했던 게 하나 있다.
왜 일본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반말을 할까.
물론 모든 일본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 체감으로는 100명 중 98명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자주 겪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그렇다.
일본인에게는 분명히 です・ます(데스·마스, 일본어의 기본적인 존댓말)를 붙여서 이야기하던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 때는 갑자기 말투가 짧아진다.
처음에는 내가 외국인이라 일본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몇 년을 살아도 계속 겪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궁금해졌다.
일본에는 외국인에게 존댓말을 해야 한다는 감각이 별로 없는 건가?
일본의 반말은 한국의 반말과 조금 다르다
한국은 나이가 인간관계와 말투를 정하는 데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 것도 결국 그 이후의 관계와 말투를 정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한두 살 차이에도 누가 말을 놓고 누가 존댓말을 하는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일본은 조금 다르다.
나이가 차이 나더라도 친해지면 タメ口(타메구치, 반말이나 격식 없는 말투)를 쓰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회사에서는 나이가 어려도 상사라면 존댓말을 사용한다.
실제로 한일 경어 사용을 비교한 연구를 찾아보니 일본어 모어 화자는 나이나 지위 같은 상하관계도 고려하지만, 실제 말투를 선택할 때는 상대와 얼마나 친한지, 즉 친밀도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한국인 일본어 학습자들은 일본어를 사용할 때도 나이와 지위의 상하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걸 보고 조금 납득이 됐다.
어쩌면 내가 일본인의 반말에 유난히 민감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외국인 친구들은 의외로 이걸 잘 모른다
실제로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크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친구들은 이런 차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옆에 있는 일본인에게는
「こちらに書いてください。」
(여기에 적어주세요.)
라고 말하고,
나에게는
「ここ書いて。」
(여기 적어.)
라고 해도 일본어를 잘 모르면 그 차이가 크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바로 들린다.
누구에게는 존댓말을 하고 누구에게는 반말을 하는지,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들린다.
한국어도 그런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생각했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걸 필요 이상으로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걸까?
그런데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이상한 경우들이 있었다.
일본인 상사에게는 존댓말, 외국인 상사에게는 반말
회사에서 특히 이상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상대가 일본인 상사라면 나이가 어리든 많든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한다.
그런데 상사가 외국인이 되면 말투가 달라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나보다 훨씬 어린 신입 직원이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게 반말로 말을 걸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 내가 기분 나쁜 이유는 그 사람이 나보다 어려서만은 아니다.
항상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같은 자리에 일본인이 앉아 있었어도 너 지금 그렇게 말했을까?
나는 일본식의 복잡한 존경어나 겸양어를 써달라는 게 아니다.
그냥 처음 보는 다른 성인에게 하는 정도의 말투면 된다.
です・ます(데스·마스).
그 정도.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내가 아는 일본인 친구 중에 한국어 통역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니 어느 날 물어봤다.
왜 일본 사람들은 외국인한테 반말을 하냐고.
재미있게도 그 친구도 처음에는 이걸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하니까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고 보니 그렇네.”
라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뉴스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일본 정치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와 트럼프 같은 외국 정치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표현의 높임 정도가 다르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정말 외국인에 대한 말투 차이 때문인지, 뉴스에서 제3자를 언급하는 일본어의 다른 규칙 때문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재미있었던 것은 일본인인 그 친구조차 내가 질문하기 전까지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혹시 이건 일본 사람들도 별로 의식하지 않고 하는 행동인 걸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런데 정말 이걸 연구한 논문이 있었다
놀랍게도 있었다.
2022년 일본의 사회언어학 연구 중에는 아예 일본어 모어 화자가 한국인 일본어 사용자와 처음 만났을 때 사용하는 タメ口(타메구치, 반말·격식 없는 말투)를 조사한 연구가 있다.
연구 결과 일본어 모어 화자들은 외국인과 처음 만나는 상황에서 丁寧語(ていねいご, 테이네이고, 정중어·존댓말)뿐 아니라 タメ口도 사용했다.
그리고 그 말투를 선택하는 데는 상대방의 일본어 능력에 대한 판단, 외국인은 일본어가 어려울 것이라는 고정관념, 외국인이라는 요소 자체 등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일본인 화자에게는 그 반말이 반드시 상대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려운 일본어를 쓰지 않고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주려는 「言語的気配り」(언어적 배려)나 「言語的おもてなし」(언어적인 환대·배려)의 의미가 포함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서 조금 허탈했다.
배려였어?
나는 기분 나빴는데.
그리고 연구에서도 바로 그 문제가 지적됐다.
일본인에게는 배려라고 생각되는 タメ口가 한국인 일본어 사용자와의 대화에서는 오히려 오해나 커뮤니케이션상의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몇 년 동안 느꼈던 불편함이 완전히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쉬운 일본어와 반말은 다른 것 아닌가
나는 외국인이 알아듣기 쉽게 말하려는 의도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다.
상대가 일본어를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면 쉬운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짧게 말할 수 있다.
복잡한 경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굳이 반말을 해야 할까?
일본에서 외국인을 위해 사용하는 「やさしい日本語」(야사시이 니혼고, 쉬운 일본어)의 공식적인 안내를 찾아보니 이 부분이 재미있었다.
어려운 존경어나 겸양어는 가급적 피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동시에 문장 끝은 「です・ます」로 하라고 되어 있다.
외국인들이 일본어를 배울 때 일반적으로 です・ます 형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こちらにご記入いただけますでしょうか。」
(이쪽에 기입해 주시겠습니까?)
처럼 복잡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ここに書いてください。」
(여기에 적어주세요.)
라고 하면 된다.
굳이
「ここ書いて。」
(여기 적어.)
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원했던 것도 사실 그 정도였다.
결국 내가 한국인이라서 더 기분 나쁜 걸 수도 있다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처음보다 조금 복잡해졌다.
일본 사람이 외국인에게 반말을 하는 현상 자체는 실제로 연구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투를 사용하는 일본인 모두가 외국인을 낮춰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는 친근하게 말하려고 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어려운 일본어를 피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그 차이에 특히 민감한 데에는 한국어라는 내 모국어의 영향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상대의 나이와 지위, 친밀도에 따라 말투가 굉장히 민감하게 달라진다.
나는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동적으로 사람들의 말투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일본인에게는 존댓말을 하다가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반말로 바뀌는 순간에는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
특히 내가 그 사람의 상사인데도 그러면 더 그렇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일본에서 이런 걸 의식하게 된 뒤 한국에 왔을 때였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우리도 그러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 사람들도 외국인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도
“어디 가?”
“한국 좋아해?”
“이거 먹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서 순간 생각했다.
어?
우리도 그러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사람에게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텐데, 상대가 외국인이면 한국어를 잘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문장을 짧게 만들고 존댓말까지 같이 없애버렸던 것 같다.
아마 일본에서 내가 반대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그것도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로는 나도 조금 신경을 쓰게 됐다.
처음 보는 외국인이나 아직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는 존댓말을 쓴다.
쉬운 한국어로 말하는 것과 반말을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일본에서 원했던 것도 똑같았다.
나는 일본인처럼 대우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경어를 사용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도 그냥 처음 보는 성인이다.
그러니 처음 보는 다른 성인에게 하듯 말해주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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