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이제 웬만한 건 익숙하다.
처음에는 신기했던 것도 이제는 별생각 없이 하고, 오히려 한국에 돌아오면 순간 헷갈리는 것들도 생겼다.
그런데 몇 년을 살아도 가끔은 여전히 생각한다.
왜?
굳이 왜 이렇게 하지?
아주 불편한 것도 아니고 일본 생활을 못 할 정도의 문제는 더더욱 아닌데, 처음에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서 당황했고 알고 난 뒤에도 여전히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마트 바구니에도 앞뒤가 있었다
일본 마트에 가면 계산하기 전 사용하는 바구니와 계산한 물건을 담아주는 바구니의 색이 다른 곳들이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몰랐다.
입구에 있는 바구니를 그냥 하나 집어서 장을 봤는데 계산대에서 직원이 내가 잘못된 바구니를 가져왔다고 뭔가 설명을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그러면 거기 써 놓던가.
물론 한 번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색깔만 보고도 자연스럽게 구분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 온 사람은 그 색깔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걸 대체 어떻게 알지?
돈은 있는데 손으로 주면 안 된다
일본에서 현금으로 계산할 때는 작은 트레이 위에 돈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나도 너무 익숙해서 아무 생각 없이 돈을 트레이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처음에는 직원에게 직접 돈을 건네려고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일본에서는 직원이 트레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살고 나니 나도 어느새 돈을 손으로 건네기보다 트레이부터 찾고 있다.
이런 건 이제 불편하다기보다는 그냥 일본에 와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작은 습관에 가깝다.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 나왔는데 돈도 내야 한다
일본 이자카야에 처음 가면 조금 당황할 수 있는 것이 오토시(お通し)다.
주문하지 않은 작은 음식이 먼저 나온다.
서비스인가 싶지만 서비스가 아니다.
계산할 때 돈을 낸다.
오토시는 이자카야에서 일종의 테이블 차지처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모르면 처음에는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이거 안 시켰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꽤 이상했다.
음료 안 마시고 싶은데요
이것도 모든 가게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이자카야나 식당에서는 1인 1드링크가 룰인 곳이 있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일단 음료부터 주문하라고 한다.
나는 음료가 마시고 싶지 않은데 음식만 주문하면 안 되냐고 하면,
1인 1드링크가 룰이라고 한다.
이럴 때 나는 아직도 속으로 생각한다.
왜 굳이?
음식을 안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안 쓰겠다는 것도 아닌데, 마시고 싶지도 않은 음료를 꼭 하나 주문해야 한다는 게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더 신기한 건 주변 일본 손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룰이라고 하면 그냥 주문한다.
나는 혼자 속으로 계속,
근데 왜?
건물 안에 흡연을 위한 방이 있다
일본에서 처음 봤을 때 조금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실내 흡연실이었다.
쇼핑몰이나 건물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흡연을 위해 따로 만들어놓은 방이 있다.
일본도 지금은 원칙적으로 실내 금연이고 예전보다 규제가 많이 강화됐다. 그래도 일정한 기준을 갖춘 별도의 흡연실은 여전히 설치할 수 있다.
그래서 건물 전체는 금연인데 그 안에 유리문으로 막힌 흡연실이 있는 풍경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이제는 많이 봐서 익숙하지만 처음에는,
밖에 나가서 피우는 게 아니라 담배 피우는 방을 건물 안에 따로 만들어놨다고?
싶었다.
ETC라며. 그런데 왜 앞에 바가 있어?
일본에서 처음 ETC를 통과했을 때도 당황했다.
한국에서 하이패스를 사용하던 습관이 있으니 ETC 카드가 있고 ETC 전용 차선이면 그냥 지나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속도를 유지하면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타고 있던 일본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뭐가?
하고 앞을 봤는데,
차단바가 있었다.
놀라서 급하게 속도를 줄여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아니, ETC라며.
바가 왜 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ETC는 한국 하이패스처럼 속도를 유지하면서 통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ETC 차로에서는 시속 20km 이하로 감속해서 차단바가 열리는 것을 확인하며 지나가야 한다.
지금은 당연히 속도를 줄인다.
그런데 처음에는 정말 몰랐다.
옆에 일본 친구가 없었으면 차단바 바로 앞에서 더 크게 놀랐을지도 모른다.
돈은 있는데 주차장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사포로에서 차를 가지고 다니다가 주차장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나가려고 정산을 하는데 카드가 안 됐다.
요즘 세상에, 그것도 사포로 같은 대도시에서 카드가 안 되는 주차장이 있다는 것도 조금 어이가 없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금이면 다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용했던 정산기는 천 엔권과 동전만 사용할 수 있었다.
돈은 있었다.
그런데 낼 수가 없었다.
차는 나가야 하고 정산은 안 되고.
결국 차에서 내려 마침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처음 보는 일본 아주머니를 붙잡았다.
사정을 설명하고 제발 잔돈 좀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아주머니가 바꿔주셔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주차장에서 못 나가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데 돈이 너무 커서 못 나갈 줄은 몰랐다.
이제는 익숙하지만, 이해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한 번 겪고 나면 별것 아니다.
마트에서는 바구니 색을 확인하면 되고, 이자카야에 가면 오토시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고, ETC 앞에서는 속도를 줄이면 된다. 주차장에 갈 때는 천 엔짜리 몇 장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몇 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익숙해졌다고 해서 항상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여전히 생각한다.
왜?
굳이?
그리고 일본에서는 의외로 그 질문의 답이 아주 간단할 때가 많다.
원래 그렇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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