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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이제 웬만한 건 익숙하다.

처음에는 신기했던 것도 이제는 별생각 없이 하고, 오히려 한국에 돌아오면 순간 헷갈리는 것들도 생겼다.

그런데 몇 년을 살아도 가끔은 여전히 생각한다.

왜?

굳이 왜 이렇게 하지?

아주 불편한 것도 아니고 일본 생활을 못 할 정도의 문제는 더더욱 아닌데, 처음에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서 당황했고 알고 난 뒤에도 여전히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마트 바구니에도 앞뒤가 있었다

일본 마트에 가면 계산하기 전 사용하는 바구니와 계산한 물건을 담아주는 바구니의 색이 다른 곳들이 있다.

처음에는 당연히 몰랐다.

입구에 있는 바구니를 그냥 하나 집어서 장을 봤는데 계산대에서 직원이 내가 잘못된 바구니를 가져왔다고 뭔가 설명을 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그러면 거기 써 놓던가.

물론 한 번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색깔만 보고도 자연스럽게 구분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 온 사람은 그 색깔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걸 대체 어떻게 알지?

돈은 있는데 손으로 주면 안 된다

일본에서 현금으로 계산할 때는 작은 트레이 위에 돈을 올려놓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나도 너무 익숙해서 아무 생각 없이 돈을 트레이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처음에는 직원에게 직접 돈을 건네려고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일본에서는 직원이 트레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살고 나니 나도 어느새 돈을 손으로 건네기보다 트레이부터 찾고 있다.

이런 건 이제 불편하다기보다는 그냥 일본에 와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작은 습관에 가깝다.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 나왔는데 돈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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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자카야에 처음 가면 조금 당황할 수 있는 것이 오토시(お通し)다.

주문하지 않은 작은 음식이 먼저 나온다.

서비스인가 싶지만 서비스가 아니다.

계산할 때 돈을 낸다.

오토시는 이자카야에서 일종의 테이블 차지처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모르면 처음에는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든다.

나 이거 안 시켰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꽤 이상했다.

음료 안 마시고 싶은데요

이것도 모든 가게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이자카야나 식당에서는 1인 1드링크가 룰인 곳이 있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일단 음료부터 주문하라고 한다.

나는 음료가 마시고 싶지 않은데 음식만 주문하면 안 되냐고 하면,

1인 1드링크가 룰이라고 한다.

이럴 때 나는 아직도 속으로 생각한다.

왜 굳이?

음식을 안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돈을 안 쓰겠다는 것도 아닌데, 마시고 싶지도 않은 음료를 꼭 하나 주문해야 한다는 게 여전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더 신기한 건 주변 일본 손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룰이라고 하면 그냥 주문한다.

나는 혼자 속으로 계속,

근데 왜?

건물 안에 흡연을 위한 방이 있다

일본에서 처음 봤을 때 조금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실내 흡연실이었다.

쇼핑몰이나 건물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흡연을 위해 따로 만들어놓은 방이 있다.

일본도 지금은 원칙적으로 실내 금연이고 예전보다 규제가 많이 강화됐다. 그래도 일정한 기준을 갖춘 별도의 흡연실은 여전히 설치할 수 있다.

그래서 건물 전체는 금연인데 그 안에 유리문으로 막힌 흡연실이 있는 풍경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이제는 많이 봐서 익숙하지만 처음에는,

밖에 나가서 피우는 게 아니라 담배 피우는 방을 건물 안에 따로 만들어놨다고?

싶었다.

ETC라며. 그런데 왜 앞에 바가 있어?

일본에서 처음 ETC를 통과했을 때도 당황했다.

한국에서 하이패스를 사용하던 습관이 있으니 ETC 카드가 있고 ETC 전용 차선이면 그냥 지나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속도를 유지하면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타고 있던 일본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뭐가?

하고 앞을 봤는데,

차단바가 있었다.

놀라서 급하게 속도를 줄여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아니, ETC라며.

바가 왜 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ETC는 한국 하이패스처럼 속도를 유지하면서 통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ETC 차로에서는 시속 20km 이하로 감속해서 차단바가 열리는 것을 확인하며 지나가야 한다.

지금은 당연히 속도를 줄인다.

그런데 처음에는 정말 몰랐다.

옆에 일본 친구가 없었으면 차단바 바로 앞에서 더 크게 놀랐을지도 모른다.

돈은 있는데 주차장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사포로에서 차를 가지고 다니다가 주차장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나가려고 정산을 하는데 카드가 안 됐다.

요즘 세상에, 그것도 사포로 같은 대도시에서 카드가 안 되는 주차장이 있다는 것도 조금 어이가 없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금이면 다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용했던 정산기는 천 엔권과 동전만 사용할 수 있었다.

돈은 있었다.

그런데 낼 수가 없었다.

차는 나가야 하고 정산은 안 되고.

결국 차에서 내려 마침 주차장으로 들어오던 처음 보는 일본 아주머니를 붙잡았다.

사정을 설명하고 제발 잔돈 좀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아주머니가 바꿔주셔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주차장에서 못 나가는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데 돈이 너무 커서 못 나갈 줄은 몰랐다.

이제는 익숙하지만, 이해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한 번 겪고 나면 별것 아니다.

마트에서는 바구니 색을 확인하면 되고, 이자카야에 가면 오토시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걸 알고, ETC 앞에서는 속도를 줄이면 된다. 주차장에 갈 때는 천 엔짜리 몇 장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몇 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익숙해졌다고 해서 항상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여전히 생각한다.

왜?

굳이?

그리고 일본에서는 의외로 그 질문의 답이 아주 간단할 때가 많다.

원래 그렇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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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몇 년을 살았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한국과 참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밥을 먹을 때 쌀을 먹고 젓가락을 쓴다. 회사에 들어가면 위아래가 있고,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원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살수록 다른 점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꽤 비슷한데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생각하는 방식이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꽤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고 간단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일본에서 몇 년을 살고 일하면서 느낀 일본은 그런 나라였다.

모두가 하는 대로 하는 것이 편한 사회

일본에서 살면서 가장 강하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집단의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떤 규칙이 정해져 있으면 일단 그 규칙을 따른다.

그 규칙이 조금 불합리하거나 비효율적으로 보여도

“왜 이렇게 하지?”

“이렇게 바꾸면 훨씬 빠르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국에서도 회사에 이상한 규칙은 많다.

그래도 비효율적인 일이 있으면 누군가는 한마디 한다.

“이거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실제로 바뀌는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일본에서는 그것보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니까.’

라는 말이 훨씬 강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내가 일하는 오피스에서도 아직 서류를 복사하고, 스캔하고, 그 종이를 다시 파일에 하나하나 쌓아둔다.

이미 디지털로 처리할 수 있는 자료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지?

그런데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고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그 방식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코로나 때도 팩스로 확진자 정보를 보냈다

일본의 코로나 초기 대응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꽤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의료기관에서 작성한 신고가 팩스로 보건소에 전달되는 경우가 있었고, 보건소에서는 그 내용을 다시 컴퓨터에 입력해야 했다.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말이다.

나중에는 HER-SYS라는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그전까지는 여러 기관에서 정보를 각각 입력하고 집계해야 했고 팩스와 전화, 이메일 같은 방식도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지금 내가 일하는 오피스에서 종이를 복사하고 스캔해서 파일에 넣는 모습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

일본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한번 받아들인 것을 바꾸는 데 더 어려움을 느끼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코로나가 흔들어놓은 도장 문화

일본에서 일하다 보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장이다.

한국에서는 오래전에 사인이나 전자서명으로 넘어간 일도 일본에서는 종이에 도장을 찍어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 때 이 문화가 꽤 큰 문제로 떠올랐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해서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일명 ‘한코 출근’.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하는 시기에 도장을 찍으러 회사에 가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는 이런 오래된 업무방식을 빠르게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전자결재와 전자서명이 확대되면서 예전처럼 모든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문화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일본에는 오랫동안 도장을 직접 만드는 장인과 작은 도장 가게들이 있었는데, 이런 직업도 이미 이전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오래된 방식이 사라지면 불편함도 사라지지만, 그 방식과 함께 존재하던 직업과 기술도 같이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 역시 단순히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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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것의 다른 얼굴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몇 대째 같은 일을 이어오고 있다는 가게를 종종 만난다.

4대째, 5대째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만들고 있거나 부모에게 배운 일을 자식이 이어서 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꽤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한국에서는 오래된 가족 사업을 이어가는 것을 경우에 따라 조금 구식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더 크고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강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오래됐다는 것 자체가 그 가게의 가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을 살다 보니 이것도 결국 같은 성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직도 이렇게 해?

라는 답답함을 만드는 것도 쉽게 바꾸지 않는 성향이고,

이게 아직도 남아 있네.

라는 감탄을 만드는 것도 쉽게 바꾸지 않는 성향이다.

회사에서 종이를 복사해서 파일에 꽂는 모습을 볼 때는 답답한데, 몇 대째 같은 일을 이어가는 작은 가게를 보면 또 멋있다.

같은 성향인데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평범하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취업에 관한 부분은 한국과 꽤 비슷하게 느껴진다.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나 이름 있는 기업에 들어가려면 당연히 경쟁이 심하다.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더 많이 벌고 좋은 집을 사고 자산을 쌓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몇 년을 살면서 내가 많이 본 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삶이었다.

일본에는 크고 작은 소도시가 정말 많다.

그런 곳에서 자기 가게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높은 연봉을 받거나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평범하고 소소하게 자기 생활을 이어가며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왜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을까.’

‘왜 더 잘 살려고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그런 삶도 아주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도 물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면 이상하게 나도 마음이 조금 급해질 때가 있다.

주변에서는 집을 사고, 자산을 만들고, 커리어를 쌓는다.

정작 나 자신은 지금까지 집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하거나 더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중심에 놓고 살아온 사람이 아닌데도 그렇다.

나도 뭔가 빨리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본에 있을 때는 그런 마음이 조금 덜하다.

하지만 그것이 일본이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외국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외국에 있으면 내가 원래 속해 있던 사회의 시간표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단은 강한데, 개인 사이에는 선이 있다

일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재미있다고 느낀 것도 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집단에 맞춰야 한다는 압력이 굉장히 강한데,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바운더리가 분명한 편이다.

아무리 친해져도 상대방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친하다는 이유로 너무 개인적인 것을 캐묻거나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나는 그 부분이 꽤 편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일단 집단이 만들어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학교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룹이 만들어지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너는 나와 친하니까 우리 그룹.

그러면 밥도 우리끼리 먹고, 이야기도 우리끼리 하고.

그 안에서 누군가 조금 다르게 행동하면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생기기도 한다.

개인의 영역에는 들어오지 않으면서도 집단 안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불편해한다.

처음에는 조금 모순처럼 느껴졌다.

속을 알기 어려운 사람들

일본 사람들과 오래 지내면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속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 앞에서 바로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상대방과 생각이 다르거나 무언가를 거절해야 할 때 그렇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안 되면 안 된다고 말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을 돌려서 하거나 애매하게 남겨놓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히 예의라고 생각했다.

상대방에게 싫은 말을 직접 하지 않고, 충돌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런데 일본어를 알아듣게 되고 일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재미있는 것도 알게 됐다.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욕을 한다기보다는 흉을 본다고 해야 할까.

누가 무엇을 했고, 그것이 왜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정말 많이 한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그 사람이 자리를 뜨고 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여러 번 봤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 것 같다. 일본에서 생활한 외국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물론 내가 일본어를 알아듣기 때문에 더 많이 들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직접 부딪치는 것을 피한다고 해서 사람에게 불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표현하지 않은 불만은 결국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Gen Z는 또 모르겠다

여기까지 일본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해놓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또 잘 모르겠다.

여러 나라에서 온 Gen Z 직원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가끔은 국적보다 세대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일본인이든 다른 아시아 사람이든 유럽인이든 묘하게 비슷하다.

특히 업무상 무언가를 이야기했을 때 대답을 안 하는 것.

그리고 마주쳤을 때 인사를 안 하는 것.

이건 대체 어느 나라 문화인가 싶을 정도로 국적을 불문하고 비슷하다.

무슨 국제적인 불문율이라도 생긴 건가 싶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일본 문화를 보고 있는 건지, 그냥 세대가 바뀌는 것을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몇 년을 살아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일본에서 몇 년을 지낸 이유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일이 일본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반해서 정착한 것도 아니고, 일본의 삶의 방식이 나와 완벽하게 맞아서 머문 것도 아니다.

그냥 일을 하다 보니 살게 되었고,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집단의 규칙에는 굉장히 충실하면서 개인의 사생활에는 선을 긋고,

변화를 꺼려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효율적인 방식이 남아 있으면서도 바로 그 성향 덕분에 오래된 가게와 전통이 살아 있고,

앞에서는 충돌을 피하면서도 뒤에서는 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 중 이제는 조금 이해되는 것도 있고,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있다.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다.

아마 어떤 나라에서 오래 산다는 건 그 나라를 점점 더 잘 알게 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간단하게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일본은 그렇다.

한국과 굉장히 비슷해 보이는데,

들여다볼수록 꽤 다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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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몇 년을 살면서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공공 시스템이 생각보다 많이 느리고, 아직도 종이를 사용하는 일이 많다는 것.

물론 일본도 계속 디지털화되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관공서에 가야 했던 일 중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게 된 것도 많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아직도 이렇게 한다고?

주민표 하나가 필요했을 뿐인데

일본에는 **주민표(住民票)**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하면 한국의 주민등록등본과 비슷한 서류다. 일본에서 살다 보면 은행이나 각종 행정업무를 하면서 생각보다 여러 번 필요하게 된다.

예전에 다른 지역에 머물고 있을 때 이 주민표가 필요했던 적이 있다.

정확히 어떤 일 때문에 필요했는지는 이제 기억이 흐릿하지만, 당시 내 주소는 이전에 살던 지역에 그대로 등록되어 있었다.

문제는 나는 이미 그 지역을 떠나 있었다는 것.

한국에서 주민등록등본 같은 서류가 필요하다면 온라인으로 발급받아 바로 출력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본에서도 당연히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주소가 등록되어 있는 지자체에서 주민표를 받아야 했고, 직접 갈 수 없다면 우편으로 신청하거나 위임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종이 한 장인데, 그 종이 한 장을 받기 위한 과정이 꽤 번거롭게 느껴졌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마이넘버카드가 있고 해당 지자체가 서비스를 지원한다면 굳이 시청이나 구청에 가지 않아도 편의점에서 주민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편해진 부분이다.

다만 외국인인 나에게 마이넘버카드를 만들고 유지하는 과정은 또 다른 이야기다.

마침 전에 사용하던 카드가 만료돼서 일본으로 돌아가면 다시 발급받아야 한다.

그건 실제로 다시 해보고 따로 한번 써볼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팩스를 쓴다

일본에 처음 살면서 꽤 신기했던 것 중 하나가 팩스였다.

한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팩스를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미 오래된 사무기기 같은 이미지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직도 팩스를 사용하는 곳이 꽤 많다.

회사나 관공서뿐 아니라 가정용 전화기에 팩스 기능이 붙어 있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직도 팩스를 쓴다고?'

싶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정말 팩스로 보내달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됐다.

일본이라고 하면 기술이나 전자제품에서는 굉장히 앞서 있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정작 어떤 업무에서는 종이를 출력해서 팩스로 보내고 있다는 게 처음에는 조금 묘했다.

몇 년을 살아도 이건 아직 적응이 잘 안 된다.

일본에서 내 출입국 기록이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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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쓰면서 현재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런데 의외로 지금도 상당히 아날로그적인 절차가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자신의 출입국 기록을 공식적으로 받아야 하는 경우.

현재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의 안내를 보면 한국의 정부24처럼 온라인에서 신청해서 바로 출력하는 방식이 아니다.

창구에서 신청하거나 우편으로 청구해야 한다.

우편으로 신청하려면 신청서를 준비하고, 본인확인에 필요한 서류와 주민표 등을 준비하고, 수수료에 해당하는 수입인지를 준비하고, 결과를 돌려받을 회신용 봉투까지 함께 보내야 한다.

이걸 읽다가 조금 웃음이 났다.

출입국 기록이라는 하나의 정보를 받기 위해서

신청서를 쓰고,
주민표를 준비하고,
필요한 서류를 복사하고,
수입인지를 준비하고,
회신용 봉투를 넣어서,
우편으로 보낸다.

2026년에도.

그런데 나는 일본에서 한국 서류를 5분 만에 뽑았다

이런 차이를 가장 크게 느꼈던 건 한국 운전면허를 일본 면허로 변경할 때였다.

면허 변경을 위해 한국에서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가 몇 가지 있었다. 운전경력이나 출입국 기록 등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였다.

그런데 당시 나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부탁하거나 한국에서 우편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정부24에 접속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신청하고 바로 출력했다.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하는 데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일본에 있다는 것도 별 상관이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특별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에 익숙했으니까.

오히려 일본에서 몇 년 생활하고 나서야 그게 굉장히 편한 시스템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일본도 변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일본의 모든 행정이 여전히 종이와 우편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마이넘버카드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었고, 주민표 같은 증명서를 편의점에서 받을 수도 있다. 이사할 때 필요한 전출신고도 일정 조건을 갖추면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처음 일본에서 생활했을 때와 비교하면 분명 편해진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여전히 팩스가 돌아가고 있고, 어떤 서류는 우편으로 신청하면서 수입인지를 준비하고 회신용 봉투까지 넣어야 한다.

아주 디지털한 것과 아주 아날로그한 것이 이상하게 같이 존재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부24에서 서류 하나 출력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

일본에서 몇 년 살아보고 나니 이제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에서 행정업무를 볼 때는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이거 혹시 온라인으로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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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회전을 하다가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리고 몇 년 뒤 한국에 돌아와서는 좌회전을 하다가 왼쪽 차선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러니까 양쪽에서 한 번씩 해본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둘 다 정말 아찔한 일이지만, 일본에서 몇 년 운전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우핸들에 좌측통행인 일본 운전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사람 몸이 이렇게 빠르게 적응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

처음에는 우회전하다가 반대 차선으로 들어갔다

일본에서 처음 운전할 때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역시 좌측통행이었다.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고 달리는 방향도 한국과 반대다.

평소에는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으니 괜찮았는데, 문제는 교차로에서 회전할 때였다.

한 번은 꽤 큰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도로가 아마 6차선인가, 아무튼 굉장히 넓었다.

우회전을 시작했는데 건너편이 너무 넓어서 순간적으로 내가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가 눈에 안 들어왔다.

어어, 어, 어디로 들어가지?

그러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버렸다.

잘못 들어간 걸 깨닫고 정말 깜짝 놀랐다.

다행히 당시 그 넓은 도로에 차가 없어서 다시 빠져나와 제대로 된 차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차가 없었던 게 정말 다행이다.

실제로 일본 경찰청에서도 외국인 운전자에게 일본은 좌측통행이고, 우측통행에 익숙한 운전자는 교차로에서 회전한 뒤 오른쪽 차로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라고 따로 안내하고 있다.

내가 정확히 그랬다.

일본에서는 빨간불에 좌회전도 안 된다고?

처음에는 신호도 조금 헷갈렸다.

한국에서 운전하던 감각으로 생각하다 보니 일본에서도 좌회전은 상황을 보고 그냥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빨간불인데 그냥 좌회전을 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에서는 빨간불이면 직진뿐 아니라 좌회전 차량도 정지해야 한다. 진행 가능한 방향을 표시하는 녹색 화살표 신호가 켜져 있다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보고 있는 차량 신호를 따라야 한다.

이걸 알고 난 뒤에는 별것 아닌데 처음에는 이런 사소한 차이들이 은근히 헷갈렸다.

처음에는 신기했던 「止まれ」

토마레 - 멈추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운전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止まれ(토마레)였다.

말 그대로 '멈춰'다.

처음에는 일본 사람들이 토마레를 지키는 모습이 조금 신기했다.

차가 한 대도 없다.

왼쪽을 봐도 없고 오른쪽을 봐도 없다.

누가 봐도 아무도 없다.

그래도 일단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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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바로는 정말 100이면 100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일단 차를 완전히 세우고 다시 출발했다.

나중에는 나도 당연하게 멈추게 됐다. 안전이 최고이니까.

실제로 일본의 止まれ는 그냥 '조심해서 가세요'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시정지 표지다. 정지선이 있다면 정지선 바로 앞에서 완전히 정지해야 한다.

철길에서도 일단 멈춘다

철길 건널목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차가 오는 것 같지 않고 차단기가 올라가 있어도 일단 멈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철길을 건너기 전에 일시정지하고 좌우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기본적인 교통 규칙이다.

앞차가 이미 확인하고 지나갔다고 해서 그 뒤를 그냥 따라서 통과하는 것도 아니고, 내 차도 다시 한번 멈춰서 확인한다.

일본에서 계속 운전하다 보면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 생각하지 않아도 하는 행동이 된다.

그리고 홋카이도에서는 눈이 온다

 

일본에서 운전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홋카이도의 겨울.

위 사진은 정말 평소 눈 오는 양의 3분의 1도 안되는 아주아주 양보한 상태.

홋카이도에서는 겨울이 오기 전에 차 타이어부터 바꾼다. 눈이 오기 전에 스터드리스 타이어로 교체하고, 겨울이 끝나면 다시 보통 타이어로 바꾼다.

매년 하는 일이라 여기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한번은 일본 친구에게 한국에서는 대부분 이렇게 겨울마다 타이어를 바꾸지는 않는다고 했더니 굉장히 놀랐다. 나한테는 오히려 매년 타이어를 바꾸는 게 처음에는 생소했는데, 친구 입장에서는 그 반대였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홋카이도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겨울 몇 달 동안 눈길과 얼어붙은 도로를 일상적으로 운전해야 하니까.

그렇게 겨울 타이어까지 준비한다고 해서 겨울 운전이 만만해지는 건 아니다.

눈길 운전 자체는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데, 한 번은 정말 심한 눈보라 속에서 운전한 적이 있다.

눈이 조금 많이 내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폭우가 쏟아질 때 앞유리 전체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눈보라가 앞유리를 계속 덮쳤다.

앞이 거의 안 보였다.

비가 아니라 눈이 그렇게 쏟아지는 상황에서 운전해본 적이 없어서 그때의 느낌은 아직도 기억난다.

아쉽게도 당시 찍었던 것 같은 영상은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는 일본 운전이 더 편하다

우선은 사람들이 과속을 잘 하지 않는다. 물론 쌩쌩 달리는 차들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양보로 정말 잘해주고 다들 안전운전 의식이 아주 강해서 모르는 길을 갈 때도 긴장하거나 당황되지 않는다. (오사카는 조금 다르다고는 들었다.)

일본에서 운전한다면 처음에는 천천히

일본에서 운전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우핸들이 제일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운전대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졌다.

오히려 교차로를 돌고 난 뒤 어느 쪽 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신호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止まれ에서는 완전히 멈춰야 한다는 것처럼 평소 몸에 배어 있던 운전 습관과 다른 부분에서 실수가 나왔다.

특히 홋카이도에서는 여기에 겨울 운전까지 더해진다.

그래도 신기하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익숙해진다.

너무 익숙해져서 한국에 돌아와 반대로 들어갈 정도로.

일본에서 처음 운전한다면 적어도 처음 며칠은 '알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지 말고, 교차로를 돌 때마다 한 번씩 '일본은 좌측통행'이라고 의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양쪽에서 한 번씩 잘못 들어가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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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하면 아무래도 겨울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이고 스키장이 유명하니 당연하다. 실제로 겨울이 메인 시즌인 곳도 많다.

그런데 나는 사실 겨울보다 홋카이도의 여름을 더 좋아한다.

뭐, 나는 스키를 안 타니까. 이건 좀 TMI고.

홋카이도의 여름은 어디를 가도 좋다. 물론 삿포로나 아사히카와 같은 큰 도시는 조금 다르지만, 작은 도시들은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도 금방 풍경이 달라진다.

차를 타고 별생각 없이 드라이브만 해도 좋다. 넓게 펼쳐진 들판과 산,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색 풍경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발리 같은 곳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한여름에는 홋카이도도 덥긴 덥다. 그래도 많이 습하지 않고, 나무밑으로만 가도 금새 땀이 식는다. 한국의 여름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공기도 상쾌하다.

그래서 여름의 홋카이도에서는 꼭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아도 좋았다.

여름의 후라노 하면 역시 라벤더

라벤더필드와 주위 풍경

그래도 여름 후라노까지 갔다면 라벤더를 빼놓을 수는 없다.

팜 토미타는 워낙 유명한 곳이고, 라벤더가 한창 필 때쯤이면 인터넷에서도 온통 보라색으로 물든 사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면 사진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라벤더필드

팜 토미타 홈페이지나 인터넷 사진을 보다 보면 쨍한 보라색 라벤더밭이 하나로 연결되어 저 멀리까지 쭉 뻗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의 밭이 나뉘어 있고 그 사이사이 도랑으로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나도 라벤더가 한창 필 때 갔는데, 눈앞에 보라색 들판 하나가 끝없이 펼쳐지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찍은 사진들이 실제로 봤을 때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그렇다고 실망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라벤더밭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가까이에서 꽃을 볼 수도 있고, 뒤로 펼쳐지는 후라노의 들판과 산까지 함께 보면 충분히 아름답다.

다만 인터넷에서 봤던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라벤더밭’을 그대로 기대하고 간다면 생각했던 풍경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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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팜 토미타에는 라벤더와 관련된 기념품도 정말 많다.

말린 라벤더도 살 수 있고 라벤더를 이용한 여러 가지 제품들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라벤더를 좋아한다면 기념품을 고르는 재미도 꽤 있다.

보라색이니까 일단 먹어본 라벤더 아이스크림

색깔만 엄청 예쁜 라벤더 아이스크림

그리고 라벤더 아이스크림.

팜 토미타에 왔고, 보라색 아이스크림이 눈앞에 있으니 호기심에 안 먹어볼 수가 없었다.

사진은 예쁘다.

맛은…… 나는 그냥 그랬다.

한 번 먹어본 것으로 충분하고 굳이 다시 먹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라벤더밭에서 라벤더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있으니 여름 후라노에 왔다는 기분은 제대로 났다.

그런데 내가 더 기억하는 풍경은 따로 있다

카나야마호 삼림공원은 처음부터 계획하고 찾아간 곳이 아니었다.

그냥 근처에 갈 만한 공원이 있나 검색하다가 가게 됐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어? 나 여기 와봤는데?

생각해보니 예전에도 한번 왔던 곳이었다. 아마 그때도 똑같이 근처 공원을 검색하다가 별생각 없이 왔던 것 같다.

그러니 장소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

그런데 두 번째로 와서 봐도 너무 아름다웠다.

관광지에 왔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넓은 공원에 호수가 있고, 그 뒤로 산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다.

사람이 북적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이런 곳 때문에 내가 홋카이도의 여름을 좋아하는 것 같다.

굳이 어디를 가야 한다고 정해놓지 않아도 차를 타고 가다가 공원 하나 검색해서 들어가 보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호수 가까이까지 내려가 보니 또 풍경이 달랐다.

산과 물과 나무 몇 그루뿐인데 한참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두 번이나 계획 없이 이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날의 하늘

이 사진은 필터 없이 찍었다.

그날 하늘이 정말 저랬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면서 하늘 아래쪽만 주황빛으로 남고, 그 위로 구름이 길게 퍼져 있었다. 점점이. 구름의 계단식 논밭을 보는 것 같았다.

사진을 다시 봐도 색이 참 신기하다.

겨울보다 여름

홋카이도는 겨울로 유명하다.

눈 덮인 풍경도 예쁘고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훨씬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름이 좋다.

라벤더가 한창 피어 있는 유명한 팜 토미타도 좋지만,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두 번이나 우연히 찾아간 호수공원도 좋았다.

어디를 꼭 찾아가지 않아도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펼쳐지는 초록색 풍경, 차창을 열었을 때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 덥지만 끈적거리지 않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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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이면 가끔 갈 만한 카페를 찾아보곤 했다.

한국에서는 카페를 검색하면 예쁜 개인 카페나 특색 있는 곳들이 정말 많이 나오는데, 일본에서는 내가 원하는 그런 카페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검색하다 보면 스타벅스 같은 체인점이 많이 나오고, 개인 카페는 사진이나 정보가 별로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珈琲豆屋 Tomo's Coffee였다.

여기도 검색했을 때 사진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곳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일단 커피는 마실 수 있는 것 같고, 한번 가볼까 싶어서 찾아갔다.

당연히 카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내가 생각했던 카페와는 많이 달랐다.

카운터

테이블이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고 디저트가 진열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앉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카운터 앞에 놓인 스툴 두어 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가 카페가 맞나?

주인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애초에 일반적인 카페가 아니었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고 도매로 납품하는 것이 주된 일이라고 했다.

근처에 온천이 있어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원두를 사러 오기도 한다고 했다. 내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온천 관광을 하면서 이곳에도 들르는, 일종의 관광 패키지 같은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나는 원두를 사러 온 사람이 아니었다.

커피 한 잔 마시러 왔는데.

하루키 소설에 나올 것 같은 곳

가게 안에는 볼 것이 정말 많았다.

카페정경

오래된 스피커와 오디오 장비, 릴테이프, CD와 사진, 포스터 같은 것들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재즈와 관련된 것들도 많았고 음악도 흘러나왔다.

그곳에 있으면서 이상하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언제,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된 오디오 때문이었는지, 재즈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 작은 공간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어느 날 찾아갈 것 같은 곳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처음부터 빈티지한 콘셉트로 만들어놓은 카페와는 달랐다.

누군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씩 가져다 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모습이 된 것 같은 공간.

커피를 파는 가게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취향 안으로 들어온 느낌에 가까웠다.

동영상으로 가게 전체를 찍어놓은 게 있는데 업로드가 안되어서 아쉽다.

드립커피 한 잔

한쪽에는 실제로 사용하는 로스터와 커피 도구들이 있었다.

커피는 드립으로 내려주셨다.

그리고 정말 맛있었다.

내가 커피 맛을 전문적으로 설명할 정도로 잘 아는 사람은 아니라 원두가 어떻고 산미가 어떻고 할 수는 없지만, 그냥 맛있었다.

그리고 잔에 한 잔만 따라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린 커피를 전부 내어주셨다.

한 잔 마시고, 남은 커피를 다시 따라 마셨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커피 맛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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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과 시작된 이야기

어떻게 대화가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주인아저씨가 퇴역 군인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처음에는 아마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이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던 이야기.

그 관계가 좋지 않게 끝났던 이야기와 그때의 감정.

그리고 지금의 내 인생과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한국말로 친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이것저것 자세하게 말한 건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그때의 감정이나 내 인생의 흐름 같은 것들을 꽤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내 과거도 모르고, 나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는 이미지도 없는 사람.

어쩌면 이날 이후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사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에게는 그냥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의 이야기였을 테니까.

알아들은 ‘네’와 못 알아들은 ‘네’

그렇다고 나만 계속 이야기했던 건 아니다.

아저씨도 자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살아온 이야기부터 딸 이야기까지 꽤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고민을 털어놓고 아저씨가 들어준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냥 서로 자기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내 일본어였다.

나는 열심히 듣고 있었고 아저씨가 이야기할 때마다

“네.”

라고 대답했다.

알아들었을 때도 “네.”

사실 잘 못 알아들었을 때도 “네.”

그런데 이상하게 아저씨는 그걸 귀신같이 알아챘다.

나는 분명 똑같이 대답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정말 알아들어서 한 '네'와 일단 알아들은 척하고 한 '네'가 달랐던 모양이다.

내가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것 같으면 아저씨는 번역기를 꺼내서 다시 설명해줬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얼굴에 다 쓰여 있었겠지.

그렇게 작은 카운터에 앉아 커피를 계속 따라 마시면서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했다.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원래는 그냥 카페를 찾고 있었다.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쉬려고 검색하다가, 사진도 정보도 별로 없는 이곳을 발견해서 찾아갔다.

막상 도착해보니 내가 생각했던 카페도 아니었다.

원두를 파는 작은 가게였고 앉을 자리라고 해봐야 몇 개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 시간 넘게 있었다.

커피도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나는 건 커피 맛보다 그날의 공간과 그곳에서 나눴던 이야기다.

오래된 오디오와 재즈.

커피 로스터.

작은 카운터.

그리고 처음 만난 사람과 한참 동안 주고받았던 서로의 인생 이야기.

지금 사진을 다시 봐도 그때 왜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도 아니고, 다시 찾아간다고 해서 똑같은 일이 생길 리도 없다.

왜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내 이야기를 많이 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조금 이상하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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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후라노에서 야키밀크라는 걸 먹은 적이 있다.

사실 어디에서 먹었는지, 그 가게 이름이 뭐였는지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키밀크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그때 그거 정말 맛있었는데.

그래서 검색도 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츄츄의 집(チュチュの家).

아, 여기였구나 싶어서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후라노에 간 건 9월이었고 츄츄의 집은 여름에만 운영하는 곳이라 이미 그해 영업이 끝난 뒤였다.

야키밀크 하나 먹겠다고 찾아봤는데 이대로 포기하기는 조금 아쉬웠다.

그러다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 안에 야키밀크를 파는 카페가 또 있다는 걸 발견했다.

모리노토케이(森の時計).

그럼 여기라도 가보자.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로

숲속길

차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일단 좋았던 건 주차가 편하다는 것.

홋카이도에서 여기저기 차로 다니다 보면 이게 은근히 중요하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주차할 곳부터 찾아 헤매야 하면 시작부터 피곤해진다.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은 주차 공간이 넉넉해서 차를 세워놓고 닝구르테라스나 모리노토케이 등 주변을 걸어 다니기 편했다.

그리고 내가 갔던 9월의 날씨가 정말 좋았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그렇다고 춥지도 않았다. 숲속이라 공기도 시원했고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길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상쾌한 공기가 폐 속으로 쑥 들어오는 기분.

아마 이게 그날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느낌 중 하나인 것 같다.

닝구르테라스

닝구르 테라스

호텔 옆 숲에는 **닝구르테라스(ニングルテラス)**가 있다.

작은 통나무집들이 숲길을 따라 이어져 있고 안에는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나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하나씩 들어가 있다.

크게 뭘 사지 않아도 천천히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가게 하나 보고 나와서 숲길 조금 걷고, 또 다른 작은 가게에 들어가 보고.

9월이라 날씨까지 좋으니 딱히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근처에는 **Soh's BAR(ソーズ・バー)**라는 바도 있다. 여기도 꽤 유명하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내가 갔던 시간에는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언젠가 저녁에 다시 가게 되면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숲속의 모리노토케이

카페 모리노토케이 입구

모리노토케이는 숲 안쪽에 있다.

카페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첫 느낌은 조금 신비스러웠다.

나무들 사이에 작은 카페가 숨어 있는데, 뭐랄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뭔가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나한테는 약간 토토로의 숲 어딘가에 있을 법한 카페처럼 느껴졌다.

모리노토케이는 일본 드라마 《優しい時間(야사시이 지칸)》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나는 드라마를 보고 찾아간 건 아니었지만 실제로 가보니 이런 곳을 왜 드라마 촬영지로 골랐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조용하다.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했고 기분 좋은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숲이 보이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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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밀크를 다시 먹다

야키밀크 고구마 사과
물잔도 숲속스럽다

내가 주문한 건 고구마와 사과가 들어간 야키밀크였다.

가격은 1,000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디저트 하나라고 생각하면 싸지는 않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다른 음식들도 전반적으로 저렴하지는 않았던 기억.

뭐, 애초에 야키밀크를 먹으려고 여기까지 왔으니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위쪽은 크렘브륄레처럼 토치로 구워져 있었다. 숟가락으로 윗부분을 톡톡 깨서 먹는 재미가 있고 안쪽은 아주 부드럽고 크리미하다.

그리고 밑에는 고구마와 사과가 들어 있었다.

맛있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주 오래전에 츄츄의 집에서 먹었던 그냥 야키밀크가 더 좋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날 정도였으니 그쪽에는 추억 보정이 조금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츄츄의 집이 문을 닫은 덕분에 모리노토케이라는 곳을 알게 됐으니 이것도 나름 괜찮은 결과.

카제노 가든과 주변

카제노가든 입구

모리노토케이 근처에는 **카제노 가든(風のガーデン)**도 있다.

일본 드라마 《風のガーデン》의 촬영지로 알려진 정원인데, 나는 예전에 한번 들어가 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입장료를 내고 다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 주변에는 이것 말고도 시즌에 따라 여러 야외 액티비티나 레크리에이션을 할 수 있는 곳들이 있다.

그래서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닝구르테라스 구경하고, 숲길 걷고, 카페에서 쉬고, 카제노 가든이나 다른 시설까지 둘러보다 보면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그냥 야키밀크가 먹고 싶어서 찾아간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날 기억에 남은 건 야키밀크보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인 것 같다.

9월의 후라노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숲속 공기는 정말 상쾌했다.

닝구르테라스의 작은 가게들을 천천히 구경하고, 숲길을 걷고, 카페에 앉아서 야키밀크를 먹고.

딱히 대단한 걸 한 건 없었다.

그런데 그게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느긋하게, 잠시라도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날.

후라노에 다시 가게 된다면 유명한 관광지를 하나 더 찾아가는 것보다 이런 오후를 한번 더 보내고 싶다.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 주변

신후라노 프린스 호텔에 차를 세워두고 닝구르테라스, 모리노토케이, 카제노 가든 등을 함께 둘러보기 편하다. 닝구르테라스 안에는 작은 핸드메이드 숍들이 있고, 주변에는 Soh's BAR와 시즌별 액티비티도 있다.

모리노토케이의 메뉴와 가격, 각 시설의 운영기간과 영업시간은 시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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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 왔다면 한 번쯤 먹어볼 만한 음식 중 하나가 수프카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걸쭉하고 진한 카레와는 조금 다르다. 이름 그대로 국물이 묽어서 정말 '카레 맛이 나는 수프'에 가까운 음식이다.

삿포로에 유명한 수프카레집들이 많지만, 내가 갔던 곳은 삿포로가 아니라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안에 있는

SOUP CURRY GARAKU ~トマムの森~

호타루 스트리트에 있는 수프카레 전문점이다.

일단, 웨이팅부터

GARAKU에 갈 생각이라면 한 가지 염두에 두는 게 좋다.

밥 먹는 시간에 맞춰 가면 정말 사람이 많다.

특히 여름에는 아시아권 관광객이 많은 편이고 식사 시간도 비교적 이르다 보니, '6시면 아직 괜찮겠지?' 하고 가도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점심 12시나 저녁 6시 정도면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각오하는 편이 좋다.

대신 웨이팅 시스템은 잘 되어 있다.

입구에 키오스크가 있고 대기가 있을 경우 여기에서 인원수와 매장 식사인지 테이크아웃인지 등을 선택하면 된다.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등 여러 언어도 선택할 수 있어서 일본어를 못해도 크게 어렵지 않다.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서 자리가 났을 때 연락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 전화나 문자 수신이 어려운 경우에는 매장 앞에서 기다리는 방식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4명으로 웨이팅을 걸었다면 4명이 모두 와 있어야 한다.

한 명이 늦는다고 나머지 세 명이 먼저 들어가 테이블을 잡고 기다리는 건 안 된다.

순서가 왔을 때 등록한 인원이 모두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이런 데서 아주 일본다운 '정해진 것은 정해진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여럿이 간다면 한 명 어디 갔는지 꼭 확인하시길.

내가 항상 먹는 건 15가지 채소 수프카레

베지터블 수프커리

 

수프카레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거의 항상 같은 걸 먹는다.

15가지 채소 수프카레.

현재 메뉴 이름은
野菜15品目 大地の恵みスープカレー.

고기 대신 여러 종류의 채소가 듬뿍 들어간 메뉴다.

그리고 내가 이 메뉴를 계속 주문하는 이유가 있다.

채소가 정말 맛있다.

브로콜리, 단호박, 가지, 연근, 파프리카 등 여러 채소가 들어가는데, 그냥 물에 삶아서 넣은 채소가 아니다.

특히 잘 구워진 채소에서 나는 불향이 정말 좋다.

나는 원래 채소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카레보다도 이 구운 채소들이 더 기억에 남을 정도다.

브로콜리 하나를 먹어도 겉에 살짝 불맛이 나면서 안은 촉촉하다.

수프카레 국물과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다.

맵기는 항상 제일 맵게

수프카레를 주문할 때는 매운맛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항상 가장 매운 단계로 주문했다.

다만 매운맛 단계는 내가 자주 먹었을 당시와 현재 메뉴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메뉴에는 매운맛이 훨씬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방문했을 때 메뉴를 보고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밥 양도 선택할 수 있다.

내 기억에는 예전에 밥 종류도 선택할 수 있었고 나는 항상 옐로우 라이스를 먹었다. 현재 메뉴 구성은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이것도 주문할 때 확인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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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인데, 따뜻한 수프를 먹는 느낌

처음 수프카레를 먹는다면 국물을 보고 조금 낯설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카레처럼 진득하지 않다.

굉장히 묽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면 국물에 감칠맛이 있고, 생각보다 향신료 향이 과하게 강하지 않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향신료 향이 강한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비교적 부담 없이 먹어볼 수 있는 카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음식은 특히 겨울에 먹으면 좋다.

밖에는 눈이 쌓여 있고 엄청 추운데, 따뜻한 수프카레 국물을 한 숟갈씩 먹다 보면 그냥 뜨끈한 수프 한 그릇을 먹는 느낌이다.

매운맛을 높이면 먹다 보면 몸도 금방 따뜻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수프카레 하면 여름보다는 토마무의 겨울이 더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삿포로 생맥주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삿포로 생맥주.

뜨겁고 매콤한 수프카레 한입 먹고 차가운 삿포로 생맥주 한 모금.

이 조합은 설명이 필요 없다.

특히 가장 매운 단계로 먹는 나에게는 거의 세트나 마찬가지다.

가격은 확실히 '리조트 가격'

맛은 좋아하지만 가격이 저렴한 곳은 아니다.

내가 먹는 15가지 채소 수프카레는 현재 토마무점 기준 1,950엔.

같은 GARAKU의 삿포로 본점보다 토마무점이 확실히 비싼 편이다.

리조트 안에 있는 식당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가격이지만, 일반적인 시내 식당 가격을 생각하고 가면 조금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도 나는 토마무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 보면 결국 한 번씩 다시 가게 된다.

그만큼 여기 수프카레, 특히 구운 채소가 맛있다.

토마무에서 수프카레를 먹는다면

GARAKU는 토마무 안에서 내가 여러 번 찾아간 식당 중 하나다.

수프처럼 묽지만 감칠맛 있는 카레 국물.

불향이 제대로 나는 구운 채소.

추운 겨울날 먹었을 때의 따뜻함.

그리고 삿포로 생맥주까지.

개인적으로 고기가 없어도 괜찮다면 15가지 채소 수프카레를 추천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식사 피크타임은 피해서 가는 것을 추천.

맛있는 건 좋은데,

배고픈 상태로 한 시간 기다리면 모든 음식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사라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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