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Leh)의 풍경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거기엔 너무나 건조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보아왔던 익숙한 색들이 아니었다. 약간 탁한 듯 깊어보이는 선명한 하늘색 아래 닿을 듯 말 듯한 메마른 사막의 산들. 도심가운데에는 꼿꼿하게 솟아있는 푸른색의 겨울나무들.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것들이 부자연스럽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가 첫 번째로 향한 곳은 레 궁전(Leh Palace)이었다.


레는 해발 3500미터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져왔다. 나는 레 궁전 입구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한번에 오르지 못해 중간에 멈춰 헉헉하고 숨을 고른 후 다시 올라가야 했다. 

입장료는 외국인 100루피, 인도사람은 15루피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각 건물과 방마다 사진,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리고 층마다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문이 있어 밖에서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잠시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레의 사람들은 라다키라고 불리는 지역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글자도 소리도 티벳어와 흡사하다. 현지사람에게 물어보니 비슷해 보여도 뜻이 서로 통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인도 현지 관광객들과는 힌디어로도 소통이 가능하며 관광지답게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역이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도로가 트이고 비행기편이 가능해지면서 부터인데, 그것이 불과 35년 전이라고 한다. 흰쌀같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음식들이 보편화 된 것도 그 이후부터라고 하니, 그 이전의 고립된 삶은 어땠을까 하고 상상을 해 보았다.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 때에도 항상 물부족현상으로 인하여 물을 아껴쓰자고 군데군데 적혀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여름에는 산에서 눈이 녹아 내려오면서 그 물로 부족한 물의 양을 보충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모든 것이 그야말로 꽁꽁 얼어버린다.

내 얄팍한 생각으로는 춥고 고립되어 모든 자원이 부족한 이런 곳에서 살아가다 보면 서로 남에게 인색해지고 팍팍해 지지 않을까 했는데, 놀라웠던 것은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만났던 어느 지역의 인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웃고 따뜻하고 친절했다. 

이런 얘기를 인도 친구에게 했더니, 그건 오히려 환경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해가 지기 전 우리는 샨티 스투파(Shanti Stupa)로 향했다.

스투파는 끝이 둥근 돔 형태의 불탑을 지칭한다. 처음에 니치다츠 후지이(Nichidatsu Fujii)라는 일본의 승려에 의해 평화의 파고다(peace pagoda)의 일환으로 제안되어 일본 승려 빅슈 교모 나카무라(Bhikshu Gyomo Nakamura)와 뉴델리 출신의 라다크 라마 쿠쇽 바쿨라(Kushok Bakula)의 감독아래 건설되었다. 

니치다츠 후지이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만난 후 그의 평화 정책에 깊은 영감을 받아 평화의 파고다를 통해 평화를 전하고자 한평생을 봉사한 일본의 승려이다. 아시아, 미국, 유럽등지에 80여개의 탑을 지었다.

비단 이러한 종교적인 이유 뿐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바라보는 뛰어난 광경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기에 충분한 곳이다. 무엇보다도 입장료가 따로 없다는 점이 좋았고, 해가 지기 전 도착하여 운이 좋으면 아주 아름다운 선셋을 볼 수 있다. 



라다크에서는 캄비르(Khambir)라고 불리는 빵을 맛볼 수 있다. 통밀로 만들어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한 건강빵이다. 거기에 버터티(수유차)를 곁들인다. 버터티는 라다크, 티벳 지역의 유목민들이 즐겨 마시는 차로 추운 날씨에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어 즐겨 마신다. 뜨거운 물에 차잎, 버터, 소금을 넣어 만든다. 전통적으로는 산양버터를 사용 하지만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해진 요즘은 저렴한 가격의 버터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산양버터 대용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라다크로 오는 길에 잠깐 들른 작은 마을에서 처음 버터티를 맛보았는데 짭짤하고 밍밍하고 뜨거운 버터맛이 나서 몇 모금 홀짝이다 남겼었다. 레에 도착 한 이후 다시 한번 도전하였으나, 역시 나의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는 것 같다.



레에서는 뚝바, 모모같은 대표적인 티벳쪽 음식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실제로 현지의 라다크 사람들은 네팔, 티벳쪽 사람들처럼 몽골쪽 아시안 느낌이 많이 나는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여서 더 정이 많이 갔던 것 같다.


2019/12/05 - [여행, 해외살기/인도, 네팔] - 라다크, 무모한 바이크 로드트립 여행기2

2019/12/03 - [여행, 해외살기/인도, 네팔] - 라다크, 무모한 바이크 로드트립 여행기1





우리가 지나온 경로는 이렇다.

리시케시(Rishikesh)-쇼기(Shogi)-꿀루(Kullu)-마날리(Manali)- 지스파(Jispa)-탕글랑라(Tanglangla)-레(Leh)


리시케시를 떠난 이후 무려 여섯째 날이 되어서야 목적지인 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선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로탕패스퍼밋을 받느라 이틀이 지연되어버렸지만, 꿀루와 마날리가 너무 좋아서 즐거워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들르기로 하였다.




마날리를 출발해 로탕 정상을 향할수록 길은 조금씩 더 험해진다. 꾸불꾸불한 산등성이는 말할 것도 없이 녹은 눈으로 파인 길은 물로 가득한 웅덩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날리를 지나 115km가량 떨어진 곳에 키롱(Keylong)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적어도 이곳에서는 기름통을 꽉꽉 채워주고 휴대용 기름통도 바이크에 따라 다르겠지만 2-3통은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키롱이후에는 레에 가까워질 때까지 주유소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급하게 기름이 필요하다면, 중간중간 나오는 마을에서 조금씩 살 수는 있지만 가격은 훨씬 비싸다. 키롱을 지나면 이제는 정말 인적이 드문 오지탐험 같은 느낌이 조금씩 나는 길들이 보인다.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는 캠프장이 보이고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군부대 시설들도 눈에 띈다.


조금만 더 달리다 보면 그나마 인적이 있는 편에 속하는 마을인 지스파(Jispa)라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거기에서부터는 원래 갖고 있던 휴대전화 신호가 아예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마날리에서 만난 커플로부터 받은 정보로 한 숙소를 찾았다. 1박에 1500루피라고 한 것을 소개를 받아서 왔고, 그 커플은 1100루피에 하루 머물러 갔다고 하니, 식사가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라면 1100루피에 머물러도 좋다고 하여 짐을 풀고 밖으로 잠시 나왔다. 식당이 몇 개, 작은 가게 몇 개가 보이고 놀랍게도 SBI은행도 있었다. 

떠나기 전 바이크를 다시 한 번 점검할 겸 동네 정비소에 들러 바이크를 맡기고 현금을 찾으러 은행 바로 옆에 있는 ATM기로 향했으나 기계고장으로 돈을 인출할 수 없었다. 작은 동네 은행이라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점심을 먹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날 채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지금부터는 진짜라는 생각에 단단히 몸과 마음을 다잡으면서 말이다.

지스파를 떠나 한 85km가량 지나면 사르추(Sarchu)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점심식사겸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군데군데 이렇게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지나가는 여행객을 위한 곳이다. 우리 옛날 주막 같은 딱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한 음식이 있으며, 하룻밤 그냥 쉬어가는 그런 집 같은 곳이다.                                                                                                                       


밥을 먹으러 주인 아저씨께 길이 어떤지 여쭤보니, 지금부터는 길이 아주 잘 닦여 있다고 말씀하셔서 안심하며 맛있게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하였는데, 정말 그 이후의 길은 내가 지금까지 여행하며 본 길중 최악의 길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비포장도로가 50km가량 이어진다. 그냥 비포장도로가 아니라 포장도로가 눈과 비 그리고 흙으로 인해 파손된 길들과 뒤섞인 그런 느낌의 비포장도로였다. 자동차로 갔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짐을 가득 실은 바이크로 가는 그 길은 1초에도 수만번씩 끄덕여지는 고개와 몸을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거기에 물구덩이투성이인 구불구불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길은 어찌나 좁던지 지나가는 차가 산등성이를 돌아가는 것만 봐도 아찔했다. 그렇게 한 3시간 이상을 달린 것 같다. 드디어 조금씩 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징징바(Zingzingbar)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마을을 지났다. 날씨도 좋아져서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조금은 우리를 녹여주어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조금씩 속이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레를 100km 남겨두고 탕글랑라(Tanglangla)라는 곳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하였다. 그때부터는 먹은 것도 없이 계속 토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피까지 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주인아주머니께서 오시더니, 지금 아파도 어떻게든 레까지 가서 병원을 가라고 일러주셨다. 산소가 많이 부족한 고산지대라 쉰다고 하더라도 상태가 절대 호전되지 않을 것이며, 고산지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많이 고생하는 지점이라고도 하셨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곳은 해발 5300미터나 되는 정말 고산지대였고, 해발 5300미터라 함은 숙련된 등산가도 산소량이 3분의 1로 떨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그때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나지 않는다.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던 상황에서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가까스로 레의 위치한 소남 누르부 병원(Sonam Nurboo Memorial hospital)에 도착했다. 응급실로 바로 향하고 싶었으나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응급실에 갈 수 없다고 하여(나는 죽을 것 같이 아팠지만 겉으로 피를 흘리고 있진 않았으므로) 진료대기표를 받아들고 기다려야 했는데, 내 앞의 대기자수만 족히 30명은 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병원측에 컴플레인을 하였더니, 그분의 대답은 이랬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직접 양해를 구해서 먼저 진찰받으러 들어가라' 라고 말이다. 어찌어찌하여 진찰을 받고, 고산지대에서 발병하는 급성 위염판정을 받고서야 침대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 링거를 맞을 수 있었다. 

5시간 가량 지나 상태가 호전되어 퇴원하였지만 그 이후로오 레를 떠날 때까지 숨을 완전히 정상적으로 쉴 수는 없었다. 계단 10개단 올라도 숨이 가파른 상태가 지속되었다. 나중에 약국에 들러 알게 된 것인데, 고산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먹는 약을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약들이 크게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마음은 조금 더 안정된다.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라다크를 가려면 마날리 하이웨이를 지나야 한다. 

-스리나가르(Srinagar) 하이웨이 쪽으로 빙 돌아서 갈 수는 있다. 길도 훨씬 더 잘 닦여 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날리 하이웨이를 지나 라다크로 간다.

-마날리 하이웨이를 지나려면 로탕패스퍼밋을 받아야 하며, 하루 통과차량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미리 신청하여 승인을 받는다. 온라인, 오프라인 신청이 다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이전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지스파를 지나면 인터넷뿐만 아니라 전화조차도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미리 휴대폰에 저장해 두어야 한다. 레에 도착해서는 거기에서 새로 개통한 심카드로 전화 사용이 가능하다.


다음은 라다크행 바이크트립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준비해가면 좋을 것들이다.


바이크용 방수용품- 보수공사를 매번 한다고는 하지만 산에서 녹아내리는 눈, 쏟아지는 흙으로 인하여 길은 항상 파손되어 있고, 물웅덩이를 자주 만난다. 방수부츠와 더불어 제대로 된 우의, 그리고 방수장갑을 준비해 가시길 권한다. 아무리 한여름이라도 물에 젖은 상태로 그 길을 지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름통-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기름양을 채웠더라도 여분의 기름통은 필수이다. 대자연앞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모험심과 도전정신- 구불구불 산등성이오 움푹 파인 길들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의 그 성취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험심과 도전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 외 준비해 가면 좋을 것들


현금- 마날리를 지나고 나면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숙소는 밥값이든 거의 모든 것을 현금으로 해결해야 하고 지스파 이후로는 레에 도착할 때까지 ATM기가 없으므로 사용할 만큼의 충분한 현금을 갖고 가는 것이 좋다.

전기포트- 나는 작은 전기포트를 갖고 있었는데, 인도여행 할 때 항상 유용하게 쓰였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인도의 커피는 아메리카노나 카푸치노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아주 달달한 믹스커피같은 것이다. 큰 도시나 외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면 체인 커피점을 찾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아메리카노 같은 커피는 구경할 수 없다. 한 인도분께서 '우리는 그런 커피는 아플 때 약으로 마셔'라고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원래는 커피용으로 커피 거름망과 작은 원두봉지를 같이 갖고 다니는데, 라면도 같이 끓일 수 있는 포트라 이번 여행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였다. 나처럼 아침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실 분이라면 작은 휴대용하나 정도는 준비하셔도 좋을 것 같다.

에어펌프- 무겁지 않고 작아 휴대하기 좋은 에어펌프를 준비하여 갔다. 사용할 일은 없었지만 중간중간 타이어 때문에 고생하는 차량들을 보았으므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준비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휴대용 산소호흡기- 많은 사람들이 고산병에 대해 잘 실감하지 못한 채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들이 다르긴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레로 바로 도착하는 경우에도 심한 고산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참고로 레는 해발 3500미터이다.



마지막으로 로탕패스와 마날리 하이웨이는 보통 10월부터 5월 초 사이에는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한 오픈날짜를 확인후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라다크로 향하는 길에서 수많은 바이커들을 만났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험한 길을 가고자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눈 쌓인 산등성이를 하나하나 지나며 무한한 모험심이 생기고, 중간에 안개가 심하게 끼어 눈 앞 20센티미터도 보이지 않았을 때에는 생명의 위협도 느꼈다. 날이 어두워지면 쉬어가는 것이 좋으며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2019/12/03 - [여행, 해외살기/인도, 네팔] - 라다크, 무모한 바이크 로드트립 여행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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