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라 쿠린지는 보라색 꽃을 피우는 관목으로 무나르를 비롯한 인도 서쪽의 산맥을 타고 꽃을 피운다.
무나르 지역의 닐라 쿠린지는 12년에 한 번씩만 꽃봉오리를 피우기 때문에 그 해가 되면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현지 사람들도 관광 특수를 톡톡히 본다.
작년이 바로 닐라 쿠린지가 피는 해였고, 나는 꼭 그것을 보고 싶어서 인도 남부로 향했다.
비행기표도 다 예약해 놓고 그 주위 가볼만한 곳도 탐색해 놓았는데, 홍수 소식이 들려왔다. 홍수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길이 다 무너지고 파손되고, 심지어는 공항까지 폐쇄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제발 공항만이라도 열어라 하면서 기도했는데, 정말 공항만 열었다. 안타깝게도 폭우로 인해 대부분의 꽃봉오리가 떨어져 나가고, 길도 파손되어서 관광객들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지방정부에서 서둘러 임시 길편을 만들어놓긴 했는데,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었지만, 일단 갔다.
가서 기다리자.
보라색 꽃들로 뒤덮이 산맥을 꼭 보고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가서 보니 그 자체로도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알프스에 있는 건지 인도의 무나르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도착공항은 코친국제공항(Cochin airport). 나는 코치공항 근처의 한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이동하였다.
코치에서 무나르 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버스 타는 곳이 좀 헷갈리기 때문에 미리 호텔 직원에게 물어 사전탐방을 했다. 혹시 친구들 몇명과 같이 여행을 온 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내가 처음 무나르에서 머물렀던 숙소는 JJ Cottage라는 곳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다. 도착하자마자 물었던 것은 '꽃이 언제 필까요?' 였다.
우습게도, 현지에서는 한명의 관광객이라도 잡아놓기 위해 꽃이 필 거라고 했다. 다만 연기가 될 뿐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결국 꽃은 거의 피지 않았지만 푸르른 녹색 그대로의 싱그러움은 폐속까지 맑게 해주었다.
다음날은 숙소의 주인을 통해 알게 된 가이드와 함께 트래킹을 갔다. 무나르는 영국 식민 시절 대규모의 티 플랜테이션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산등성이을 넘어 굽이굽이 다 티트리들이었다. 많은 지역사람들이 티트리 재배 및 수확을 하며 살아간다. 꼭두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일해도 일당은 대략 5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여 참 안타까웠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홍차부터, 녹차 그리고 흰차까지 그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들으며 한참을 올라가니 숨이 탁 트이는 곳에 도달해 있었다.
가이드가 준비해 온 아침으로 우타팜(Uttapam)을 먹었다. 우타팜은 도사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도톰하고 부드러운 빵 같은 음식으로, 주로 아침식사로 많이 먹는다.
시내는 멀지 않은 곳이 있다. 시내라고 해봐야 작은 마켓거리가 형성된 정도이지만, 나름 필요한 물건은 다 살 수 있다. 오토릭쇼를 타고 100루피 정도에 시내까지 갈 수 있다.
4일째 되던 날, 꽃이 필거라는 기대는 접었다. 그럴바에는 아예 더 산 안쪽으로 옮기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여 숙소를 산 안으로 옮겼다. JJ cottage의 주인이 하는 다른 숙소여서 편하게 옮길 수 있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신선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눈 앞으로 보이는 것은 전부 녹색이고, 그대로 걸어가면 티트리 사이로 빠져 끝없는 미로를 헤매일 것 같았다.
위치가 그렇다보니 거기에서 식사를 주문 할 수도 있었다. 큰길로 내려가려면 적어도 20분 정도는 걸어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아침과 점심은 여유롭게 숙소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문득 트래킹을 도와주었던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그 가이드의 부모님도 티 플랜테이션에서 일을 하시는데, 예전 영국사람들이 관리를 했을 때가 더 노동착취가 덜하고 사람답게 대접해 주었다고 하던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예전 60-70년대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모두가 성숙되어 가고 발전해 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11년 후, 나는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꼭 온통 황홀하게 뒤덮인 보라색 산을 보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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