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어떤 사람은 춤을 추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요가는 그런 의미에서, 정확히 그 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요가는 '우리가 누군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에 의해 우리의 두뇌, 몸의 화학적 반응, 심지어 유전적인 요인까지 요가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요기들은 예전부터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이 요가라는 말은 요가를 하려면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일보다 더욱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는 의미이다. 

물론 우리가 어떤 일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하다보면 어떠한 변화는 일어난다. 그것이 요리를 하는 것이던, 춤을 추는 것이던, 애완견을 돌보는 것이던지 간에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표현이지 당신 자체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요가는 방법 또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방법 또는 기술로 인해 당신이 누군인가에 대한 답이 바뀔 수도 있다. 

지금 당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당신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여러 유전적, 환경적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형태를 통해서 어떤 다양한 경험들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누군인가 하는 것은 변화되며 그것들이 종합적으로 당신을 어떤 타입의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어떤 타입의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말로 '나는 이런 강박을 갖고 있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야'라고 하면 '나는 아침에는 절대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야'하고 단정짓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런것들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 타입들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정의 내린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밤에 깨어있으면 올빼미형 인간이 되는 것처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변화할 수 있다. 한가지로 단정짓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는 것은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요가아사나(동작)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우리의 육체부터 시작하여 조금 더 유연해지기 위해서다. 그리고 조금씩 삶의 모든 면에서 유연해져 간다. 감정적, 정신적, 심리적인 모든면에서 바라보는 삶이 조금씩 유연해져야 한다. 

우리가 부딪히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나는 이렇다. 나는 저렇다.' 하고 단정지어 그 안에 갇혀버려서는 안된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껍질이 조금씩 얇아지다 보면 당신은 사람에서 존재자체가 된다. 껍질 안에 갇혀있으면 사람으로 국한되는 것이지만, 그 껍질을 벗어난다면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요가를 한다는 것은 그 껍질이 점점 얇아져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수행(Sadhana)은 왜 하는 것일까.

우리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지다 보면, 모든 것이 습관처럼 지나간다. 모든 것이 육체적인 것으로 국한 될수록 많은 것들이 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되어버린다. 요가는 그 주기를 부러뜨리는 것이다. 그 동그란 써클을 잘라 일직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어딘가로는 가게 된다. 

써클안을 돌고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데도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같은 곳을 반복해서 돈다. 시야가 너무 좁아 내가 지금 같은 써클을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지만 고개를 들어 멀리 바라보면 내가 지금 인생이라는 서커스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 모든 반복적인 싸이클의 강박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기억으로부터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것들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수행은 그런 것이다. 매일매일 해나가면서 한걸음씩 한걸음씩, 그것이 큰걸음이든 작은 걸음이든 빠른걸음이든 느린걸음이든 한발자국씩 우리가 가야할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어떤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삶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삶을 있는 그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 그 기술이 바로 요가이다.


요가는 아주 어려운 자세로 몸을 뒤틀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요가의 아주 작은 부분에 속한다. 

요가는 모든것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감각이나 생각, 경험들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결집하여 하나의 바운더리를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가 뿜어내는 공기를 마시고 나무는 우리가 뿜어내는 공기를 마신다. 현대과학에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에너지라고 밝힌 바 있다. 

요가는 그것을 경험으로서 아는 것이다. 신을 믿는 것처럼 무조건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을 통해서 그 하나가 됨을 아는 것이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당신의 존재를 통해 경험한다면 당신은 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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