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기회였다. 프랑스 친구가 있는데 현재 아시아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 인도네시아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발리에 있었기 때문에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 바투카라스? 들어본 적 없었다.



찾아보니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서핑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작은 서핑 마을이었다. 

인도네시아는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이고 바닷가 마을은 어디를 가나 아름답다. 서핑을 할 만한 물의 조건을 갖고 있는 곳이 몇 명 서퍼들로부터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 조그만 무슬림 마을에 말이다.


가는 길부터가 너무 재미있었다. 

우선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팡안다란(Pangandaran)의 누사위루(Nusawiru)공항으로 가는 국내선을 갈아탄다.

팡안다란은 인도네시아 자바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아름다운 서부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서핑으로 유명한 바닷가들로 인해 관광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자카르타-누사위루(Nusawiru)편을 운행하는 항공사는 수지에어(Susi air)라는 항공사 하나뿐인다. 전직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수지라는 사람이 설립하였다.

그저 저가 항공사 중 하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지에어는 원래 항공화물 운반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항공사이며, 프라이빗 제트 서비스 등도 같이 하고 있었다. 공항 라운지도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깔끔하고 빵이나 음료도 같이 준비되어 있다. 

체크인 할 때 몸무게를 물어봐서 그때는 의아 했는데, 나중에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12명 정도 탑승이 가능한 경비행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무게에 민감하고, 오른쪽 왼쪽 균형도 잘 맞추어야 한다.




체격이 큰 사람이 둘 다 오른쪽에 앉아있으면 한 명을 반대쪽으로 옮기라고 해서 균형을 맞추었다. 돌아갈 때에는 아예 체중계 위에 짐과 같이 올라가라고 해서 아주 민망한 경험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마치 몰디브에서 경비행기 타고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기분 좋게 출발하였다. 사실 내심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무사히 누사위루 공항에 도착했다.

누사위루 공항은 아주 작은 공항이다. 밑에 사진에 조금 큰 집 한 채가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공항이었다.



공항에 내려서는 숙소에서 나온 픽업차를 타고 바투카라스(Batukaras)로 이동했다. 

내리자마자 바닷가 냄새가 물씬 풍기는 후덥지근한 공기가 몸 전체를 뒤덮었다.


시장가, 바닷가를 지나 한적한 마을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숙소 앞 길을 건너 바로 보이는 바닷가를 한참 바라보니 마음이 가라앉는 듯 했다. 서핑을 하는 바닷가는 걸어서 15분 남짓 되는 거리였다. 친구는 서핑보드를, 나는 태닝오일을 들고 바닷가로 나섰다. 출렁이는 파도를 가뿐히 넘기는 서퍼들의 유연한 춤사위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항상 조용한 분위기의 마을인가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라마단 기간중이라 주민전체가 무슬림인 그 마을은 낮시간이 그렇게 조용했던 것이었다. 라마단은 무슬린 단식기간으로 해가 진 후에만 금식이 풀려 식사를 할 수 있고, 일출과 일몰 사이에는 물만 마실 수 있다. 

그래도 바닷가 근처에는 맥주를 파는 가게들도 몇 군데 있었고, 우리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에도 외국인들이 많아 항상 맥주를 주문해서 마시곤 했다. 물론 우리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villa monyet이라는 곳이었는데, 원숭이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인도네시아어이다. 그곳에서 서핑레슨 예약 및 보드대여나 공항 픽업 서비스, 식사 주문도 가능하였다. 직원들도 하나같이 친절하여 너무 좋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피쉬바베큐가 열리는데, 싱싱한 생선을 구워낸 맛은 물론 일품이었고, 인도네시아식 야채 사이드 디쉬와 밥을 곁들여 인도네시아식 나시참푸르 같은 느낌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서핑을 안하기 때문에 친구가 서핑을 할 동안 내내 바닷가에서 이리저리 몸을 구워가며, 적당히 시간맞춰 뒤접어주곤 했다. 안타깝게도 날이 흐린 날이 많아서, 그런 날은 맥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그것도 좋았다.


바투카라스는 다른 관광지처럼 둘러볼 만한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쇼핑을 할 만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레스토랑도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말 그대로 서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었다. 서핑과 동시에 즐길만 한 다른 것도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숙소에서 만난 커플 중 영국인 남자와 아르헨티아 여자 커플이 있었는데, 둘은 여자가 영국에서 일 할 때 만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일상에서 벗어나 1년간 서핑투어를 하기고 했고 지금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서핑을 즐기며 서핑백을 디자인하여 자신들의 브랜드를 온라인상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디지털 노매드니 하는 말들을 잘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디지털 노매드였다. 



바투카라스는 내가 가본 여행지 좀 아무런 사전 조사나 나의 관심사 없이 무작정 간 최초의 여행지이자, 그 느긋한 마을의 분위기에 나를 그대로 녹일 수 있었던 따뜻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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