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호흡을 올바르게 하고 있을까?


호흡은 비자율신경계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제대로 호흡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제대로 호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사실 태어났을 때부터 자동적으로 호흡을 했기 때문에 '호흡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고 있다'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위에 아기가 있다면 숨 쉬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보자. 아기들은 우리보다 천천히 숨을 쉬며, 배가 볼록하게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평온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호흡아이의 호흡은 언제나 평안하고 안정적이다.


우리 모두 처음에는 그렇게 호흡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호흡하는 것이 원래 호흡하는 방식이고,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세월이 흐르면서, 성인이 되어가면서, 여러 주위 환경의 영향으로, 스트레스로, 올바르지 않은 자세로 인해 짧아진, 가파진, 끊어지는 호흡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우리는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호흡과 평균수명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2020/11/19 - [요가, 명상] - 프라나야마(Pranayama)란 무엇인가


평균수명을 이야기할 때의 단위로 우리는 '년' 또는 '해'를 사용한다. 100세시대 하는 말은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년'이 되는 시대가 도달할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요가에서 보는 수명의 관점은 다르다. 수명을 결정짓는 요인이 '년' 또는 '해'가 아니라 '호흡수'가 된다.

호흡을 길고 천천히 하면 평균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말인데, 그 이해를 돕기 위해 동물들의 평균수명을 '분당 호흡횟수'로 예를 들어 보겠다.

개는 호흡이 빠른 걸로 알려져 있는데, 분당 호흡수는 최소10번에서 30번 미만이며 평균 수명은 8~12년이다.



코끼리는 개보다 호흡이 느린데, 누워있을 때는 분당 호흡수가 4~5회, 서 있을 때는 10~12회이다. 평균 수명은 종에 따라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40~60년 사이이다. 

거북이의 경우 대게 분당 호흡수가 4~5회로 아주 적으며, 평균 수명은 대략 150년 정도가 된다.

인간은 분당 호흡수가 16~18회, 평균 수명은 70~80년이다. 인간의 경우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수명이 다른 동물보다는 호흡수에 비해 조금 더 길다고 볼 수는 있다.


거북이는 대표적인 장수 동물이다


위의 경우를 보았을 때, 호흡이 빠를 수록 평균 수명이 짧고, 길수록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말은 호흡 횟수가 많을수록 수명을 빨리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스쿠버다이빙에서 정해진 양의 산소탱크를 메고 물 속에 들어가 정해진 만큼의 호흡을 얼마나 오랫동안 하느냐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의 호흡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평소에 빠른 호흡을 하고 있을까 느린 호흡을 하고 있을까를 되짚어보도록 하자.

우리의 몸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경쟁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면 우리 몸은 자동으로 싸울 자세를 갖추고 있다. 


스트레스는 호흡을 얕고 빠르게 한다.


이것은 마치 산을 지나다 호랑이를 만났을 때와 같은 상황으로, 지금 당장 도망갈 수 있도록 근육을 준비시키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산소공급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얕고 빠른 호흡을 하게 된다. 우리는 그래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얕고 빠른 호흡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원래의 호흡을 되찾을까.

횡격막을 인지하는 깊은 호흡과 그로 인한 몸의 독소들을 배출해 내는 것이 필수이다. 신체적으로 근육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닌, 마음의 독소 또한 배출해 내야 한다.


깊고 자연스러운 원래의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부터 시작하자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원래의 호흡으로 돌아와야지만 프라나야마를 마스터하기 위한 준비가 되는 것이다. 호흡이 잦아들어 길어지게 되면 자신의 생각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호흡이 길게 연장하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호흡이 길어짐으로서 'Kumbhaka' 즉 호흡이 없는 상태로 들어설 수 있고, 생명 그 근원으로 한발짝 다가갈 수 있게 되며, 쿤달리니 샥티를 깨울 수 있다.

 










요즘에 들어 마음챙김 명상, 사운드 명상 등 마쁘게 앞만보고 달려오던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상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명상이란 생각이 없는, 마음이 없는 상태로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일까.



요가의 관점에서 본 마음은 크게 4개의 카테고리로 정리될 수 있다.



1. 붓디(Buddi)- 지


현대과학에서는 마음, 의식, 두뇌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기쁜 상태, 슬픈 상태, 기분이 나쁜 상태에 있는 것은 몸에서 발생되는 어떤 특정한 화학물질의 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요가에서는 두뇌는 심장, 간, 폐처럼 몸의 속한 하나의 기관으로 본다. 현대과학에서는 두뇌를 하나의 신체기관의 범주에서 빼내서 따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듯, 지성 또는 지식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인것 처럼 여겨지는 것은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온전히 지성에 촛점이 맞춰서 있기 때문이다. 

붓디 즉 지성은 물질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관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으며 둔한 것 보다 날카로운 것이 살아남기에 이득이다. 그래서 붓디는 날카로운 칼과 같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과학이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관점이다. 하나의 현상을 분해하고 조개어서 원인을 밝혀내고 현상들을 살핀다. 

넘쳐나는 정보와 데이터들을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똑똑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성도 기억이 없다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2. 아항카라(Ahankara)- 정체성


붓디 즉 지성은 내가 현재 갖고 있는 이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이다.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지성이 어떻게 기능할것인가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태도에 발끈하고 화를 내게 된다. 한국부모밑에서 태어났어도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즉 지성은 날카로운 칼이며 정체성은 그것을 들고 있는 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제한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제외한 모든것은 틀린것이 되고 만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테러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 즉 내가 믿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배척한다. 그렇기때문에 우주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지성은 기억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흔들리는 손이 되고 만다.




3. 마나스(Manas)- 기억


어류에서 지금의 인간이 되기까지 우리 몸은 우리가 진화되어온 모든 기억을 몸에 간직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야 과학적으로 밝혀진 진화의 과정들을 지금으로부터 15000년, 최초의 요기인 아디요기는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알았다. 우리는 증조부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몸은 그들의 코 생김새를, 이마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적인 기억은 우리의 행동을 제한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요가시스템에서는 어떻게 하면 한정된 기억으로 정체된 사람들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한정된 기억은 행동을 비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아주 활성화된다면 그 정체성또한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 



4. 칫타(Chitta)


칫타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성이다. 

우리가 지금의 우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떤 피부색을 갖고 있는지 등등 이 모든것이 기억이 있기때문에 가능하다. 나에게 저장된 기억은 내가 갖는 관점을 결정한다. 

기억은 거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제한이며 경계이다. '이것은 나이고, 저것은 너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나의 시스템내에서 기억하는 것과 당신이 당신의 시스템내에서 기억하는 것은 나와 너의 영역이자 경계이다. 

인간과 개가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인간이 개가 되고 개가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몸의 시스템이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억은 강하다.

하지만 칫타는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지성에 대한 경계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지성의 경계가 없어진다면 모든것에 대한 액세스가 가능해진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지금껏 생존문제가 이렇게까지 안정적인 적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나면 당장 저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명상에 대해 더 눈을 뜨고 관심있게 접근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우리가 명상을 시작할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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