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들어 마음챙김 명상, 사운드 명상 등 마쁘게 앞만보고 달려오던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상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명상이란 생각이 없는, 마음이 없는 상태로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일까.
요가의 관점에서 본 마음은 크게 4개의 카테고리로 정리될 수 있다.
1. 붓디(Buddi)- 지성
현대과학에서는 마음, 의식, 두뇌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기쁜 상태, 슬픈 상태, 기분이 나쁜 상태에 있는 것은 몸에서 발생되는 어떤 특정한 화학물질의 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요가에서는 두뇌는 심장, 간, 폐처럼 몸의 속한 하나의 기관으로 본다. 현대과학에서는 두뇌를 하나의 신체기관의 범주에서 빼내서 따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듯, 지성 또는 지식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인것 처럼 여겨지는 것은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온전히 지성에 촛점이 맞춰서 있기 때문이다.
붓디 즉 지성은 물질적인 그리고 육체적인 관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으며 둔한 것 보다 날카로운 것이 살아남기에 이득이다. 그래서 붓디는 날카로운 칼과 같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과학이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관점이다. 하나의 현상을 분해하고 조개어서 원인을 밝혀내고 현상들을 살핀다.
넘쳐나는 정보와 데이터들을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일수록 똑똑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성도 기억이 없다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2. 아항카라(Ahankara)- 정체성
붓디 즉 지성은 내가 현재 갖고 있는 이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이다.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지성이 어떻게 기능할것인가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태도에 발끈하고 화를 내게 된다. 한국부모밑에서 태어났어도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즉 지성은 날카로운 칼이며 정체성은 그것을 들고 있는 손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제한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제외한 모든것은 틀린것이 되고 만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테러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 즉 내가 믿는 것이 올바르다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배척한다. 그렇기때문에 우주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지성은 기억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흔들리는 손이 되고 만다.
3. 마나스(Manas)- 기억
어류에서 지금의 인간이 되기까지 우리 몸은 우리가 진화되어온 모든 기억을 몸에 간직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야 과학적으로 밝혀진 진화의 과정들을 지금으로부터 15000년, 최초의 요기인 아디요기는 오로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알았다. 우리는 증조부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몸은 그들의 코 생김새를, 이마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적인 기억은 우리의 행동을 제한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요가시스템에서는 어떻게 하면 한정된 기억으로 정체된 사람들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한정된 기억은 행동을 비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아주 활성화된다면 그 정체성또한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
4. 칫타(Chitta)
칫타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난 지성이다.
우리가 지금의 우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떤 피부색을 갖고 있는지 등등 이 모든것이 기억이 있기때문에 가능하다. 나에게 저장된 기억은 내가 갖는 관점을 결정한다.
기억은 거대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제한이며 경계이다. '이것은 나이고, 저것은 너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나의 시스템내에서 기억하는 것과 당신이 당신의 시스템내에서 기억하는 것은 나와 너의 영역이자 경계이다.
인간과 개가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인간이 개가 되고 개가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몸의 시스템이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억은 강하다.
하지만 칫타는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지성에 대한 경계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지성의 경계가 없어진다면 모든것에 대한 액세스가 가능해진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고 지금껏 생존문제가 이렇게까지 안정적인 적은 없었다. 점심을 먹고나면 당장 저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명상에 대해 더 눈을 뜨고 관심있게 접근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우리가 명상을 시작할 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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